덕포진은 사적 제292호로 서해로부터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되는 인후인 손돌항에 천험의 요새를 이용한 군사의 요충이고, 병인양요(1866)와 신미양요(1871) 격전을 치른 곳이다. 임진왜란의 쓰라린 체험을 겪은 조선 선조때 창설된 것으로 추정된다. 조선 조 숙종8년(1682) 3월까지 월곶진이 주진이었으나 그 후 덕포진을 주진으로 승격하여 영종과 안흥진을 관장하게 하였고, 숙종 20년(1694) 통진현이 도호부로 승격하면서 덕포진도 강화도로부터 통진으로 그 예속이 변경되었다. 그 후 영종36년(1760)에는 덕포진에 종삼품의 수군첨사가 수군316명을 지휘했으며 부에서 전속수영 거리는 남쪽으로 15리에 이르렀다. 덕포진은 1980년에 발굴되어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으며, 구한말의 포대모습과 당시 사용했던 대포 등을 볼 수 있다. 발굴 당시에 탄약고 및 포대에 불씨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불씨 보관장소 ‘파수청지’가 발굴되었으며 소포, 중포, 포탄 및 상평통보가 출토되었다. 돈대를 따라 산책을 할 수 있으며 인근에는 손돌목이 있다. 당시 발굴된 6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5문, 덕포진 전시관에 1문이 관중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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